공사(公事) 제2장
1. 상제께서 정미년 三월 초에 광찬을 대동하고 말점도(末店島)에 들어가시려고 (광찬의 재종이 말점도에서 어업을 경영하고 있었음) 갑칠과 형렬을 만경 남포(南浦)에 불러 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지공사로 인하여 정배됨이니 너희들은 성백(成伯)의 집에 가서 그와 함께 四十九일 동안 하루에 짚신 한 켤레와 종이등 한 개씩을 만들라. 그 신을 천하 사람에게 신게 하고 그 등으로 천하 사람의 어둠을 밝히리라" 하셨도다. 두 사람은 명을 받들어 성백의 집에 가서 그대로 시행하였도다. 그 후 상제께서 말점도로부터 나오셔서 그 짚신을 원평 시장에 가서 팔게 하시고 그 종이등에는 각기 "음양(陰陽)"두 글자를 쓰셔서 불사르시니라.
2. 또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 마장군(馬將軍)이라 써서 문위에 걸고 한아름쯤 되게 묶어 인경을 만들어 방 가운데에 달아 매고 백지를 바른 다음에 二十四방위 자를 둘러 쓰고 그 글자 사이에 다른 글자를 써 넣고 또 그 위에 백지를 오려서 비늘을 달아 붙이시니 그 모형이 마치 철갑옷과 같아지니라. 그 자리에 형렬, 공신, 광찬, 장근, 응종, 원일, 도삼, 갑칠, 그 외 몇 사람이 있었도다.
3. 또 상제께서 장근으로 하여금 식혜 한 동이를 빚게 하고 이날 밤 초경에 식혜를 큰 그릇에 담아서 인경 밑에 놓으신 후에 "바둑의 시조 단주(丹朱)의 해원도수를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에 붙여 조선 국운을 돌리려 함이라. 다섯 신선 중 한 신선은 주인으로 수수방관할 뿐이오. 네 신선은 판을 놓고 서로 패를 지어 따먹으려 하므로 날짜가 늦어서 승부가 결정되지 못하여 지금 최 수운을 청하여서 증인으로 세우고 승부를 결정코자 함이니 이 식혜는 수운을 대접하는 것이라" 말씀하시고 "너희들이 가진 문집(文集)에 있는 글귀를 아느냐"고 물으시니 몇 사람이 "기억하는 구절이 있나이다"고 대답하니라. 상제께서 백지에 "걸군굿 초란이패 남사당 여사당 삼대치"라 쓰고 "이 글이 곧 주문이라. 외울 때에 웃는 자가 있으면 죽으리니 조심하라" 이르시고 "이 글에 곡조가 있나니 만일 외울 때에 곡조에 맞지 않으면 신선들이 웃으리라" 하시고 상제께서 친히 곡조를 붙여서 읽으시고 종도들로 하여금 따라 읽게 하시니 이윽고 찬 기운이 도는지라. 상제께서 읽는 것을 멈추고 "최 수운이 왔으니 조용히 들어보라" 말씀하시더니 갑자기 인경위에서 "가장(家長)이 엄숙하면 그런 빛이 왜 있으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니 "이 말이 어디에 있느뇨"고 물으시니라. 한 종도가 대답하기를 "수운가사(水雲歌詞)에 있나이다." 상제께서 인경 위를 향하여 두어 마디로 알아듣지 못하게 수작하셨도다.
4. 상제께서 어느 날 가라사대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의 차별로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가 없고 청국으로 넘겨도 그 민족이 우둔하여 뒤 감당을 못할 것이라. 일본은 임진란 이후 도술신명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맡겨 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일시 천하통일지기(一時天下統一之氣)와 일월 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 주어서 역사케 하고자하나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인(仁)이니라. 만일 '인'자까지 붙여 주면 천하가 다 저희들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인'자를 너희들에게 붙여 주노니 잘 지킬지어다"고 이르시고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 될 것이오. 저희들은 일만 할 뿐이니 모든 일을 밝게 하여 주라. 그들은 일을 마치고 갈 때에 품삯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덕하게 하라" 하셨도다.
5. 상제께서 대신명(大神明)이 들어설 때마다 손을 머리 위에 올려 예를 갖추셨도다.
6. 상제께서 "청주(淸州) 만동묘(萬東廟)에 가서 청국 공사를 행하려 하나 길이 멀고 왕래하기 어렵고 불편하므로 청도원(淸道院)에서 공사를 행하리라" 하시고 청도원 류찬명의 집에 이르러 천지 대신문을 열고 공사를 행하셨도다. 그 때에 김송환이 그 시종을 들었느니라.
7. 상제께서 정미년 四월 어느 날 돈 천냥을 백남신으로부터 가져오셔서 동곡에 약방을 차리시는데 이 때 약장과 모든 기구를 비치하시기 위하여 목수 이경문(李京文)을 불러 그 크기의 치수와 만드는 법을 일일이 가르치고 기한을 정하여 끝마치게 하시니 약방은 갑칠의 형 준상의 집에 설치하기로 하셨도다.
8. 목수가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하였기에 상제께서 목수로 하여금 목재를 한곳에 모아놓게 하고 앞에 꿇어앉힌 후 크게 꾸짖고 봉서 하나를 목수에게 주고 꿇어앉은 그대로 불사르게 하시니 갑자기 번개가 번쩍이는지라. 목수가 두려워서 땀을 흘리는 것을 보고 "속히 마치라" 독려하시니라. 그 목수가 수전증이 나서 한 달이 넘은 후에 겨우 일을 끝내니라. 약방을 차린 후 상제께서 공우에게 "천지의 약기운은 평양에 내렸으니 네가 평양에 가서 당제약을 구하여 오라"고 명하셨도다. 그 후에 다시 그에 대한 말씀이 없으시고 그날 밤에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9. 약방을 설치하신 후 '원형이정 봉천지 도술약국 재전주동국 생사판단(元亨利貞 奉天地 道術藥局 在全州銅谷 生死判斷)'이란 글귀를 쓰셔서 불사르셨도다. 약장은 종삼 횡오 도합 십오 칸으로 하고 가운데에 큰 칸이 둘 아래로 큰 칸이 하나이니라. 상제께서는 그 위 십오칸 중의 가운데 칸에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 쓰고 그 속에 목단피를 넣고 그 아래에 '열풍뇌우불미(烈風雷雨不迷)'라고 횡서하고 또 칠성경을 백지에 종서하고 그 끝에 '우보상최등양명(禹步相催登陽明)'이라 횡서하고 약장 위로부터 뒤로 밑판까지 따라서 내려 붙이고 그 위에 '양정 유월 이십일 음정 유월 이십일(陽丁 六月 卄日 陰丁 六月 卄日)'이라 쓰시니라. 궤 안에 '팔문둔갑(八門遁甲)'이라 쓰고 그 글자 위에 '설문(舌門)' 두 자를 낙인하신 후 그 글자 주위에는 二十四점을 홍색으로 찍고 약방에 통감(通鑑) 서전(書傳) 각 한 질씩 비치하셨도다.
10. 상제께서 병욱에게 명하시어 전주에 가서 삼백 냥으로 약재를 사오게 하셨는데 마침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이 비는 곧 약탕수(藥湯水)라고 이르셨도다.
11. 상제께서는 약방에 갖추어 둔 모든 물목을 기록하여 공우와 광찬에게 주고 가라사대 "이 물목기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그 곳에 봉안한 석가불상을 향하여 그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리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불사르라" 하시니 두 사람이 금산사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이로부터 몇 해 지난 후에 금산사를 중수할 때 석가불전을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니 미륵전 앞이 넓어지느니라. 이 불전이 오늘날의 대장전이로다.
12. 상제께서 용두리 주막에 계실 때 광찬에게 한방의서(漢方醫書) 방약합편(方藥合編)을 사오게 하시고 "네가 병욱의 집에 가서 주묵(朱墨)으로 이 책 중에 있는 약명에 비점을 찍으라" 이르시니 광찬이 명대로 시행하여 올리니 상제께서 열람하시고 그 책을 불사르셨도다.
13. 상제께서 농암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허미수(許眉쇪)가 중수한 성천(成川) 강선루(降仙樓)의 일만 이천 고물은 녹줄이 붙어 있고 금강산(金剛山)일만 이천봉은 겁기가 붙어 있으니 이제 그 겁기를 제거하리라" 하시고 "네가 김광찬, 신원일과 함께 백지 일방촌씩 오려서 시(侍)자를 써서 네 벽에 붙이되 한 사람이 하루 사백자씩 열흘에 쓰라. 그리고 그 동안 조석으로 청수 한 동이씩 길어 스물네 그릇으로 나누어 놓고 밤에 칠성경(七星經) 삼칠편을 염송하라" 명하시니라. 형렬은 명을 좇았으되 신원일이 즐거이 행하지 아니하므로 상제께 아뢰이니 상제께서는 "정읍 이도삼을 불러서 행하라" 분부하시니라. 형렬은 그를 데려다가 열흘동안 분부대로 행한 후에 김갑칠을 보내어 일을 마쳤음을 상제께 아뢰게 하였더니 상제께서 갑칠에게 양(羊)한마리를 사 주며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라"고 이르셨도다.
14. 상제께서 십일 월에 사기를 옮기는 공사를 보시고자 동곡에 돌아오셔서 전일에 주었던 양을 잡게 하고 그 양 피를 손가락 끝에 묻혀 일만 이천 시(侍)란 글자에 바르시니 양 피가 다한지라. 상제는 "사기(沙器)를 김제(金堤)로 옮겨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 때 김제 수각(水閣) 임상옥(林相玉)이 왔기에 상제께서 청수를 담던 사기 그릇을 개장국에 씻어 그에게 주시니라. 그는 영문을 모르고 주시는 대로 그 그릇을 받았도다. 그는 며칠 후에 그 사기 그릇의 용처를 여쭈었더니 "인부를 많이 모아 일할 때 쓰라" 하셨도다.
15. 상제께서 십일 월에 동곡에 머무시면서 금강산 공사를 보고 형렬에게 "내가 삭발하리니 너도 나를 따라 삭발하라"고 분부하시나 형렬이 속으로 달갑게 생각하지 아니하였으나 부득이 응락하니라. 또 갑칠을 불러 "내가 삭발하리니 내일 대원사에서 가서 중 금곡을 불러 오라" 하시므로 형렬은 크게 근심하였으되 이튿날 다시 그것에 대한 말씀이 없었도다.
16. 상제께서 어느 날 후천에서의 음양도수를 조정하시려고 종도들에게 오주를 수련케 하셨도다. 종도들이 수련을 끝내고 각각 자리를 정하니 상제께서 종이 쪽지를 나누어주시면서 "후천 음양도수를 보려 하노라. 각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점을 찍어 표시하라"고 이르시니 종도들이 마음에 있는 대로 점을 찍어 올리니라.
응종은 두 점, 경수는 세 점, 내성은 여덟 점, 경석은 열두 점, 공신은 한 점을 찍었는데 아홉 점이 없으니 자고로 일남구녀란 말은 알 수 없도다"고 말씀하시고 내성에게 "팔선녀란 말이 있어서 여덟 점을 쳤느냐"고 묻고 응종과 경수에게 "노인들이 두 아내를 원하나 어찌 감당하리요"라고 말씀하시니 그들이 "후천에서는 새로운 기력이 나지 아니하리까"고 되물으니 "그럴 듯하도다"고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경석에게 "너는 무슨 아내를 열둘씩이나 원하느뇨"고 물으시니 그는 "열두 제국에 하나씩 아내를 두어야 만족하겠나이다"고 대답하니 이 말을 듣고 상제께서 다시 "그럴 듯하도다"고 말씀을 건너시고 공신을 돌아보면서 "경석은 열둘씩이나 원하는데 너는 어찌 하나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건곤(乾坤)이 있을 따름이오 이곤(二坤)이 있을 수 없사오니 일음 일양이 원리인 줄 아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너의 말이 옳도다"고 하시고 공사를 잘 보았으니 "손님 대접을 잘 하라"고 분부하셨도다. 공신이 말씀대로 봉행하였느니라. 상제께서 이 음양도수를 끝내고 공신에게 "너는 정음 정양의 도수니 그 기운을 잘 견디어 받고 정심으로 수련하라"고 분부하시고 "문왕(文王)의 도수와 이윤(伊尹)의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니라"고 일러주셨도다.
17. 종도들의 음양도수를 끝내신 상제께서 이번에는 후천 五만년 첫 공사를 행하시려고 어느 날 박공우에게 "깊이 생각하여 중대한 것을 들어 말하라" 하시니라. 공우가 지식이 없다고 사양하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라 아뢰기를 "선천에는 청춘과부가 수절한다 하여 공방에서 쓸쓸히 늙어 일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불가하오니 후천에서는 이 폐단을 고쳐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각 가려서 친족과 친구들을 청하고 공식으로 예를 갖추어 개가케 하는 것이 옳을 줄로 아나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네가 아니면 이 공사를 처결하지 못할 것이므로 너에게 맡겼더니 잘 처결하였노라"고 이르시고 "이 결정의 공사가 오만년을 가리라"고 말씀하셨도다.
18. 十二월 초하룻 날 부인은 상제의 분부대로 대흥리에서 백미 한 섬을 방에 두고 백지로 만든 고깔 二十여개를 쌀 위에 놓고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니라. 이 때 상제께서 "불과 물만 가지면 비록 석산바위 위에 있을지라도 먹고 사느니라"고 말씀하시고 그 백미로 밥을 지어 이날 모인 사람들에게 배불리 먹이셨도다.
19. 상제께서 十二월에 들어서 여러 공사를 마치시고 역도(逆度)를 조정하는 공사에 착수하셨도다. 경석, 광찬, 내성은 대흥리로 가고 원일은 신경원의 집으로 형렬과 자현은 동곡으로 떠났도다. 상제께서 남아 있는 문공신, 황응종, 신경수 들에게 가라사대 "경석은 성(誠) 경(敬) 신(信)이 지극하여 달리 써 볼까 하였더니 스스로 청하는 일이니 할 수 없도다"고 일러주시고 또 "본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장하였음은 후천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음은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소원을 이룩하지 못하고 끌려가서 죽은 자가 수만 명이라. 원한이 창천하였으니 그 신명을 그대로 두면 후천에는 역도(逆度)에 걸려 정사가 어지러워지겠으므로 그 신명들의 해원두목을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 제국을 말하니 이는 자청함이니라. 그 부친이 동학의 중진으로 잡혀 죽었고 저도 또한 동학총대를 하였으므로 이제부터 동학신명을 모두 경석에게 붙여 보냈으니 이 자리로부터 왕후 장상(王侯將相)의 해원이 되리라" 하시고 종이에 글을 쓰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고 "훗날에 보라. 금전소비가 많아질 것이며 사람도 갑오년보다 많아지리라. 풀어 두어야 후천에 아무 거리낌이 없느니라"고 말씀을 맺으셨도다.
20. 상제께서 "선천에서 삼상(三相)의 탓으로 음양이 고르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거주성명 서신사명 좌상 우상 팔판 십이백 현감 현령 황극 후비소(居住姓名 西神司命 左相 右相 八判 十二伯 縣監 縣令 皇極 後妃所)"라 써서 광찬에게 "약방의 문지방에 맞추어 보라"고 이르시니라. 그가 "맞지 않는다"고 아뢰니 "일이 헛 일이라"고 말씀하시기에 경학이 "여백을 오려버리고 글자 쓴 곳만 대여 보는 것이 옳겠나이다"고 말하기에 그대로 행하니 꼭 맞으니라.
21. 한번은 상제께서 임상옥에게 사기 그릇을 주신 뒤에 공우를 대동하고 전주로 가시는 도중에 세천에 이르시니 점심 때가 되니라. 공우가 상제를 고송암(高松菴)의 친구 집에 모시고 상제께 점심상을 받게 하였도다. 상제께서 문득 "서양기운을 몰아 내어도 다시 몰려드는 기미가 있음을 이상히 여겼더니 뒷 골방에서 딴전 보는 자가 있는 것을 미처 몰랐노라" 하시고 "고 송암에게 물어 보고 오너라"고 공우에게 이르시고 칠성경에 문곡(文曲)의 위치를 바꾸어 놓으셨도다.
22. 상제께서 최익현과 박영효(朴泳孝)의 원을 풀어 주신다고 하시면서 "천세천세 천천세 만세만세 만만세 일월 최익현 천포천포 천천포 만포만포 만만포 창생 박영효(千歲千歲 千千歲 萬歲萬歲 萬萬歲 日月 崔益鉉 千胞千胞 千千胞 萬胞萬胞 萬萬胞 蒼生 朴泳孝)라 쓰고 불사르셨도다.
23. 상제께서 만국 창생들의 새 생활 법으로써 물화상통을 펼치셨도다. 종도들이 상제의 명을 좇아 공신의 집에서 밤중에 서로 번갈아 그 집의 물독 물을 반 바가지씩 퍼내 우물에 쏟아 붓고 다시 우물물을 반 바가지씩 독에 붓고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여러 우물과 독의 물을 번갈아 바꾸어 갈아 부었도다.
24. 신원일이 개벽공사를 빨리 행하시기를 상제께 간청하니라. 상제께서 "인사는 기회가 있으며 천시는 때가 있으니 그 기회와 때를 기다릴 것이니 이제 기회와 천시를 억지로 쓰면 그것은 천하에 재화를 끼치게 될 뿐이며 억조의 생명을 억지로 앗아가는 일이 되리라. 어찌 차마 행할 바이냐"고 말씀하셨으되 원일이 "방금 천하가 무도하여 선악을 분별하기 어려우니 속히 이를 잔멸하고 후천의 새 운수를 열어 주시는 것이 옳을까 하나이다"고 말하면서 간청하니 상제께서 심히 괴로워 하셨도다.
25. 공신의 집에서 또 어느 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이 뒤에 전쟁이 있겠느냐 없겠느냐"고 물으시니 혹자는 있으리라고 하고 혹자는 없으리라고 아뢰니라. 상제께서 가라사대 "천지 개벽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라고 하시고 전쟁기구를 챙겨 보신다면서 방에 있는 담뱃대 二十여개를 거두어 거꾸로 모아 세우고 종도들로 하여금 각기 수건으로 다리와 머리를 동여매게 하시고 또 백지에 시천주를 써서 심을 부벼 불을 붙여 들게 하고 문창에 구멍을 뚫어 놓은 다음에 모두 담뱃대를 거꾸로 매게 하고 "행오를 잃으면 군사가 상하리라" 이르고 종도들로 하여금 뒷문으로 나가서 부엌으로 돌아와서 창 구멍에 담뱃대를 대고 입으로 총소리를 내게 하고 다시 변소로 돌아와서 창 구멍에 담뱃대를 대고 다시 총 소리를 내게 하고 또 헛청으로 돌아들어 그와 같이하되 궁을(弓乙)형을 지어 빨리 달리게 하니 늙은 사람이 씨근덕 거리더라. 다시 상제께서 이르시기를 "이 말세를 당하여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뒷날 대전쟁이 일어나면 각기 재조를 자랑하리니 재조가 월등한 나라가 상등국이 되리라." 이 공사가 끝나자 천고성이 사방에서 일어났도다.
26. 그리고 그림을 그려 문 공신의 집 벽에 붙이고 이를 정의도(情誼圖)라고 이름 하셨도다.
27. 무신년 七월에 이르러 상제께서 원일을 이끄시고 부안 변산 우금암(遇金岩)아래에 있는 개암사(開岩寺)에 가시니라. 그 때 상제께서 원일에게 삶은 쇠머리 한 개와 술 한 병과 청수 한 그릇을 방안에 차리고 쇠머리를 청수 앞에 진설하게 하신 후에 원일을 그 앞에 꿇어 앉히고 성냥 세 개비를 그 청수에 넣으시니라. 이 때 갑자기 풍우가 크게 일어나고 홍수가 창일하는도다. 상제께서 원일에게 "이제 청수 한 동이에 성냥 한 갑을 넣으면 천지가 수국(水國)이 될지니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우니 그리 알지어다. 만일 이것을 때가 이르기 전에 쓰면 재해만 끼칠 뿐이니 그렇게 믿고 기다려라"고 일러주시고 진설케 하신 것을 모두 거두니 곧 풍우가 그쳤도다.
28. 상제께서 원일을 곧 자기 집으로 돌려보냈도다. 원일이 집에 돌아와서 보니 자기 동생의 집이 폭우에 파괴되고 그 가족은 원일의 집에 피난하였도다. 원래 원일의 아우는 상제를 믿지 아니하였으며 언제나 불평을 품었도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당한 후부터 두려워서 무리한 언사를 함부로 쓰지 아니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