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님께서는 도인들이 기도에 간직된 진리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습니다.
“기도란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정신을 모아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의 통일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념을 끊임없이 생각하여, 지성으로 소정의 주문을 봉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에 대한 인식이 옳고 그름에 따라 믿음이 참된 믿음도 되며 거짓된 믿음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진실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야 하며 가면 가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참된 정성이 있는 곳에 상제님의 하감(下鑑)하심이 있는 것이며, 천지신명의 보살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에서의 기도는 물론이고 회관이나 회실에서 주일기도를 모심에 있어서도 철저를 기하여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직장에 다니거나 외출을 하거나 바쁜 일을 하는 등 여건이 여의치 못한 경우에는 그 시간을 잘 기억하여 마음속으로 심고를 드리고 집에 돌아온 후 보충으로 기도를 모심이 가할 것이며 또한 가정의 사정이 허락지 않아 기도의식을 행하지 못하는 경우에 마음속으로 상제님께 발원함도 기도를 모심과 같다 할 것입니다.
시간을 잊지 않고 심고를 드리는 그 자체가 상제님을 항상 잊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모시는 지극한 영시(永侍)의 정신이니 기도를 모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도 ‘그 사람의 마음을 볼 뿐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믿음과 기도는 옳은 정성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기도 수련의 중요성
대순진리회는 목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도의 완성(도통)을 이루고 집단적으로는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여 지구인류가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재 상기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도가 불로불사의 도이지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상제께서는 불로불사를 말씀하셨지 불로장생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불로불사에 대한 상제님의 성구는 전경에 세군데 나옵니다.
권지 1장 11절 : ~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 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예시 80절 : 후천에는 사람마다 불로불사하여 장생을 얻으며 궤합을 열면 옷과 밥이 나오며 만국이 화평하여 시기 질투와 전쟁이 끊어지리라.
예시 81절 : ~ 백성은 원울과 탐음의 모든 번뇌가 없을 것이며 병들어 괴롭고 죽어 장사하는 것을 면하여 불로불사하며 빈부의 차별이 없고 마음대로 왕래하고 하늘이 낮아서 오르고 내리는 것이 뜻대로 되며 지혜가 밝아져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시방 세계에 통달하고 세상에 수·화·풍(水火風)의 삼재가 없어져서 상서가 무르녹는 지상선경으로 화하리라.
우리는 주문 수련을 합니다. 신명이 계시기 때문에 주문이 있는 것입니다. 인신상합(人神相合)이 곧 신통이고 도통입니다. 그러므로 천지의 대신명들과 내면의 신성과 조율하기 위하여 주문을 외우는 것이죠. 우주의 봄과 여름시기에 분열성장하여 번성한 만유를 통일하여 결실을 이루는 우주의 가을시기에 영적인 통일을 기하고 내면의 신성을 일깨우는 데 있어서 주문수련보다 좋은 법은 없습니다.
도전님께서 수도와 공부의 차이를 밝혀주셨습니다. 수도는 개인의 정(精)과 신(神)을 통일하여 영을 맑게 함으로서 영통의 통일을 기하는 것이며 공부는 통일된 개인의 정신을 전체적으로 하나로 묶어내는 것입니다.
수도란 인륜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나가는 일이며, 수련은 수심연성(修心鍊性), 세기연질(洗氣鍊質)의 준말로 심성을 닦고 기질을 세련되게 하는 것입니다. 수련은 본질상 순결하고 진실한 본연의 양심을 회복하여 심(心)과 영(靈)을 통일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공부 않고 아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후천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도와 수련이 멀리 있습니다. 낙락장송도 깎아야 동량되고 고산에 묻힌 옥도 갈아야 보배 된다 하였듯이 수도 없이는 도통이 없고 수련 없이는 천지가 쓰고자할 때 올바른 쓰임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자나 깨나 늘 하느님을 잊지 않고 영원히 모시는 영시(永侍)의 정신이니, 일상생활 속에서 기도, 수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니 않습니다.
3. 기도함을 집에 모시는 의의
1) 기도함을 집에 모시는 것은 후천건설의 축소판
기도함을 집에 모실 때 하는 첫 번째 행위는 집안 청소입니다. 같은 공간에 새로운 기운이 들어오면 기존의 낡은 기운은 그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는 것이 일반적인 변화의 원리입니다. 이것을 예수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한다고 하였고 상제께서는 망하려는 세간을 아낌없이 버리고 새로운 배포를 차리라고 하셨으며 우리가 어릴 때 모래판에서 놀며 불렸던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 집 다오”라는 동요는 바로 후천개벽을 상징한 노래였습니다.
지상천국의 건설은 지구적 규모에서의 청소를 동반합니다. 지금은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지구도 5차원으로 상승하기 위하여 급속한 변형의 과정에 있습니다. 지구 자기장의 변화, 지진에 의한 지각변동, 태풍, 해일 등은 낡고 병든 것을 청소하는 지구의 자기정화과정으로 새로운 지구로 거듭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과정입니다. 이것은 인간사회도 마찬가지이고 인간의 정신과 육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변형의 과정에 놓여있는데 그 모든 변형의 첫 시발점이 바로 청소입니다. 청소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교체되기 전에 행하는 의례와 같은 것입니다.
묵은 기운이 채워져 있는 곳엔 새로운 기운을 감당하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선천의 낡은 의식과 사상과 재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우리 도를 접하거나 접하더라도 행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후천을 건설하는 과정이 지구적 규모의 청소를 동반하듯이 집안을 청소하여 낡은 것을 쓸어버리고 신성한 기도함을 모시는 것은 후천건설의 축소판으로 세계개벽의 기초로 됩니다.
청소-청결-정리-정돈 후 기도함을 모시세요. 집안의 기운이 새롭게 바뀝니다. 삶에 새로운 변화를 주세요. 변화를 축복하세요. 혁신은 우리의 신조입니다. 잘한 것은 계승하고 잘못된 것은 새롭게 바꾸어나가는 것이 혁신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수행입니다.
(청소는 필요 없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하여 쓸모없는 것을 치우는 것이고 청결은 청소된 상태를 유지 하는 것이며, 정리는 필요한 것을 제 자리에 있도록 구분하는 것이고 정돈은 정리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2) 도장 영대의 상징물
영대란 하느님의 영을 모신 곳을 말하고 도장이란 천지신명을 모신 곳입니다. 이 우주에서 하느님의 영을 직접 모신 곳은 대순진리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도를 천지대도라 하며 크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장 내에서도 영대는 숭도문 안에 위치하여 도인들이 지극한 성경신으로 예를 취하는 장소입니다.
남이 나에게 베푼 혜택을 은혜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수많은 관계를 맺고 수많은 은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갚으면서 사는 것을 도리를 행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입은 은혜 중에 가장 근본적인 은혜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압니다. 지생천명(地生天命)이라 하였으니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인간 또한 천지에서 쓰고자하여 나온 것이니 천지의 은덕에 보답하면서 사는 것은 인간의 근본도리입니다. 생명과 수명, 복록은 하느님의 크신 은혜이니 지극한 성경신으로 보은하며 영시(永侍)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된 도리(人道)입니다.
전경에 수명도 성경신이요 복록도 성경신이라 하였습니다. 후천의 복록과 수명이 하느님을 영원히 모시고 하늘의 일을 하는 도인들 각자의 성경신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집집마다 기도함을 모시고 날마다 기도를 모시며 기도, 수련을 생활화하는 것은 도인들의 수도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기도함은 도장 영대 단상의 축소판이니 기도함을 모신 도인들의 집이 바로 수명소요 복록소가 되는 것입니다.
3) 자성(自誠)에 기초한 자발적인 수도
집에서 기도함을 모시고 기도 수련을 생활화하는 것은 집이 도인들 생활의 기본 터전이 되므로 자발적인 정성에 기초한 수도생활로 이어진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도인들의 수도가 깊어질수록 도장과 회관, 집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도장이 곧 나의 보금자리요, 나의 집이 바로 신성한 수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신조는 안심 안신 경천 수도입니다. 경천이라 함은 하늘을 지극히 공경하여 상제께서 늘 내안에 계심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정성하고 공경을 다하는 마음을 자나 깨나 잊지 않고 일상의 생활에서 법례에 합당케 행하는 마음가짐을 이릅니다. 진정한 수도는 일상의 생활이 곧 수도가 되는 것입니다. 수도란 인륜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나가는 것이니 인륜과 도덕을 구현하고 밝히는 일이 일상의 삶과 떨어져서 어디에서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안심 안신이 마음의 내적 수행의 생활신조라면 경천 수도는 외적 수행의 실천형태입니다. 그러므로 늘 일상생활에서 안심 안신을 수행의 훈전으로 삼고 경천 수도를 실천 수행하여 세상에 인륜도덕의 푯대를 세우는데 있어서 도인들의 집집마다에서 마음의 등대를 밝히고 기도수련을 생활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4) 신성한 가족 - 온 가족이 기도 모시는 것
도인들의 집에 기도함을 준비하고 기도를 모시면 온 가족이 다 함께 기도를 모실 수 있는 넓은 가능성이 열립니다. 우리의 도는 수행을 가정을 한단위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도인의 수효도 한명 두명이 아니라 일호 이호로 가구단위로 세는 것입니다. 한 가구에 한 사람의 도인만 있어도 그 기운을 다 같이 받기 때문에 도인 가정은 수행의 한 단위가 됩니다.
대순진리회의 목적은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지상 천국은 세계평화를 의미하며 세계평화는 사회화평, 이웃화합, 가정화목, 개인의 양심의 회복을 통하여 달성됩니다. 전경에 상제께서 천하가 분란한 것도 나로부터 말미암음이요 천하가 조용한 것도 다 나로부터 근원한다하셨듯이 세계평화도 그 근본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내적인 수행을 통하여 정직하고 진실한 인성의 본질을 회복하여 무자기를 이루는데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진실로 자신의 내적 마음상태의 반영인 것입니다. 자기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내적 잣대에 의해서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상대는 나의 거울입니다. 분리는 환상입니다.
가족은 우리라는 개념으로 분리의 환상을 깨는 사회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가족의 보살핌 없이, 가족의 은혜를 벗어나 존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강포에 싸인 3년간은 때 되면 젖을 먹이고 진자리를 마른자리로 갈아주며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살펴주는 가족의 사랑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라면서도 사회생활을 배우고 익히는 양육의 과정 또한 가족이 아니면 그 누가 챙겨줄 수 있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보살핌 없이 고아원에서 자라는 환경을 그토록 박복하게 여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은 사회화평, 세계평화의 대본(大本)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 영적인 존재입니다. 육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먹어야 살듯이 영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또한 영적인 양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때 되어 밥을 먹듯이 우리도의 수행 법방에서 사시기도를 모시는 것은 후천의 영적 양식을 섭취하는 과정입니다. 옛 고서에 주문으로 밥을 먹고 주문으로 옷을 입으며 자나 깨나 염불농사 잊지 말라고 당부한 것은 이를 두고 이른 것입니다. 비결에 삼봉산하 반월선(三峰山下 半月船), 삼봉산하 우명성지 천민출(三峰山下 牛鳴聲地 天民出)이란 말도 다 마음의 밭을 갈고 닦아 옥토로 만들어 안심 안신의 경지를 이루면 그것이 바로 십승지(十勝地)라고 한 것입니다.
실로 가정의 두 기둥인 부부가 서로 화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며 축시(丑時)에는 온 가족이 모여 기도를 모시고 법수를 마시고 잠에 드는, 그런 신성한 가정을 이룩하는 것이 바로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일입니다. 진실로, 행복한 가정은 지상천국의 관문이요, 후천 선경의 초입문입니다.
5) 포덕의 기지
지금까지도 그러하지만 앞으로도 상제님의 덕화를 널리 선양하는 데는 개인뿐 아니라 가족이 기본단위로 되어야합니다. 포덕은 그 사람 또는 가족에게 상제님의 덕화를 심어주는 과정입니다. 한 개인이 도를 위하여 불고가사, 불고처자하는 것도 가상한 일이나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우리도의 취지로 볼 때, 이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자기사랑, 가족사랑, 직장사랑, 이웃화합을 통하여 자신의 음덕을 주변에 퍼뜨려나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상제님의 덕화를 선양하는 일에 포덕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도인이 있는 곳이 포덕소요, 기도모시는 도인의 가정이 복록소인 것입니다.
도인들의 집집마다 온가족이 모여 기도를 모시고 화목한 평화로운 가정을 이룩하여 이웃과 따뜻한 정을 나눌 때, 개문납객에 기수기연이라고 유유상종의 법칙으로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상태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도의 덕화를 선양하는 기지가 될 것입니다.
6) 화목한 가정은 후천사회의 기본단위
세포가 우리 인체의 기본 생명단위이듯이 가정은 사회의 한 세포입니다. 인체가 세포로 이루어져 있듯이 사회는 가족이라는 세포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러니 가족을 파괴하는 것은 사회의 한 기본단위를 깨뜨리는 것으로, 천지의 근원을 어지럽히는 일로 됩니다. 전경에 “유부녀를 범하는 것은 천지의 근원을 어긋침이니 죄가 워낙 크므로 내가 관여치 않노라”고 하신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병 중에도 세포들 간의 결합인 장기나 조직의 병은 고칠 수 있으나 세포 자체에 탈이 난다면 무슨 수로 고칠 수 있겠습니까. 각종 암이 불치이고 난치인 것은 세포자체의 변형으로 오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개개의 세포가 건강해야 육체가 건강하듯이 개개의 가정이 화목하고 건전해야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법입니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는 단순하고 간단한 금언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회공동체의 근본적인 운영원리를 담고 있는 진리입니다. 수신 없이 제가 없고 제가 없이 치국이 없으며 치국 없이 평천하를 이룰 수 없습니다. 무자기로 개인의 수행의 완성을 기하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가훈의 대목으로 삼아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며, 이웃과 화합하고 사랑이 넘치는 화평한 사회를 만들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이 바로 우리도의 인존사상이며 평화사상입니다. 무자기, 가정화목, 이웃화합. 사회화평, 세계평화는 우리의 실천강령이니, 무자기로 정신을 개벽하고 가정화목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우리의 목적을 이루는 기본적인 실천형태입니다.
실로 화목하고 신성한 가정은 후천 선경의 기본 단위인 것이니, 모든 도인들은 집집마다 기도를 모시는 일에 큰 힘을 넣어 대순의 성음(聖音)이 세계만방에 널리 울려 퍼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7) 가정 기도와 회관 교화
기도모시는 도인들의 집을 많이 늘리고 회관에서 주일기도를 모시며 정기적으로 회관에서 방면 전체 도인들에 대한 교화를 실행한다면 가정 수도와 회관교화를 적절히 알맞게 결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4. 수행과 사회생활
1) 수도생활과 사회생활의 관계
흔히들 우리 도를 사농공상의 도라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사농공상은 직업의 4대영역입니다. 士, 商은 직(職)이고 農, 工은 업(業)입니다. 직업에서 업인 농공은 자연으로부터 직접적인 생산을 이루는 것이고 직인 사상은 일차생산을 돕고 유통시키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사농공상은 직업을 뜻하고 전경에 직자의야(職者醫也) 업자통야(業者統也) 성지직(聖之職) 성지업(聖之業)이라 하였으니 그중에서도 의통은 성스러운 직업입니다.
우리도가 사농공상의 도라는 것은 선천의 수행처럼 개와 닭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절이나 산에 들어가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 사농공상에 몸을 붙여 인산(人山)속에서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 만이 세공할 수 있듯이 만물의 영장인 사람 또한 사람 속에서 갈고 닦이는 겁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하였고 상통천문과 하달지리보다 중찰인사가 어렵다 하였으니, 인류의 마지막 완성 공부가 중찰인사 공부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선천의 유불선의 공부가 인생12진법(포태양생욕대관왕쇠병사장)으로 인류의 의식이 발전하는 과정에 선도는 포태를 불도는 양생을 유도는 욕대를 즉 인류의 의식이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는 선도로써 가르쳐왔고 낳아서 기를 때는 불도로써 가르침을 폈으며 옷을 입혀 관대를 맬 때는 유도로써 예의범절을 가르쳐왔던 것입니다. 이제 우주의 순환주기의 끝에 인류의 의식이 성인의 수준으로 성장하는 관왕의 시기를 맞이하여 천지의 대도가 출현하였으니 이름하여 유불선삼합지도(儒彿仙三合之道), 미륵의 도, 대순진리회가 등장한 것입니다.
석가불은 좌불인데, 미륵불은 입불인 이유를 아시겠나요? 미륵불은 또한 갓을 쓰고 있습니다. 그 옛날 성인이 되면 갓을 쓰고 풍잠을 달았는데, 이것은 닭도 성계가 되면 머리에 벼슬을 달듯이 풍잠을 다는 이치는 어른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어린아이는 머리도 기르지 않고 서서 다니지 못합니다. 그리고 온갖 계율을 붙여 “얘야 이것은 하면 안 된단다, 이것을 금하라 저것을 금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다 어른이 되면 그에 맞게 가르침의 방법도 달라지게 됩니다. 미륵불이 입불이고 갓을 쓴 것은 어른의 표시이며 미륵이 장차 조선에 오신다는 표현입니다. 전 세계에서 미래불인 미륵불이 가장 많이 모셔져 있고 전승 설화 또한 가장 많이 전해 내려오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아이는 낳으면 산방에서 외부와 격리된 채 키우다가 장차 커가면서 사회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고 성인이 되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맡아 생활하게 됩니다. 여기에 우리도가 사농공상의 도요 생활 속의 도가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도생활과 사회생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도생활이 곧 사회생활이며 사회생활이 곧 수도생활인 것입니다. 산속에서 닦는 것은 아이들이 닦는 도이고 사회 속에서 닦는 것은 어른이 닦는 도입니다. 옛 고서에 진승(眞僧)은 하산시(下山時)라(진짜 중은 하산할 때라)한 말은 이를 두고 이른 것입니다.
진정한 수도인은 사회생활을 성실히 수행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국가사회에는 충직하며, 부부는 서로 화목하여 가정을 평화롭게 유지하는데 힘쓰며, 윗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친구들과 직장동료들 사이에는 신망이 높은 것입니다.
대순진리회는 사회의 윤리도덕을 숭상하는 민족종단입니다. 대도를 수행한다고 하면서 가정을 소홀이 하고 사회의 지탄을 받을 짓을 행하는 것은 우리 도의 근본이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가도(自家道)를 닦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성실히 수행하여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한 것이 바로 성인의 도를 닦는 수도생활인 것임을 깊이 명심하고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2) 어떻게 조화시켜나갈 것인가?
이상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한다면 수도생활과 사회생활의 조화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습니다. 해원이 상생이고 상생이 해원이듯이 수도생활과 사회생활을 둘이 아닌 것으로 보고 수도란 일동 일정을 예법과 법리에 합당케 행해나가는 것이므로 가정과 직장, 단체와 사회에서의 나의 지위와 역할을 바르게 이해하여 그에 합당한 도리를 다해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해원상생은 상대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는 것이며, 내가 먼저 잘하면 다 좋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도수련을 생활화할 데 대한 중요성을 살펴보았지만 도인들에게 있어서 기도수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오래된 수반이라 할지라도 주문을 외우지 않으면 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문 수련은 인간완성을 위한 우리도의 8가지 기본 법방중의 하나입니다.
기도수련의 생활화는 도인들이 거주하는 집에 기도함을 모시고 축시기도를 매일 모시는 것으로 실현할 수 있습니다. 전경에 복록도 성경신이요 수명도 성경신이라 하셨듯이 상제님을 정성껏 모시는 기도함이 있는 곳이 바로 후천의 복록과 수명을 비는 복록소이자 수명소가 되는 것입니다.